인류의 큰 스승이었던 노자는, 억지로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 자연과 삶의 흐름을 따라 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도덕경의 21번부터 25번을 통하여, 삶에 순응하면서 나 자신을 곰곰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큰 덕의 풍모는 오직 이 도만을 따르나, 도라는 것은 단지 황이요, 홀이다. 홀하고 황한데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황하고 홀한데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 요하고 명한데 그 가운데 정기가 있으니, 그 정기는 매우 순수하며, 그 가운데 신이 있다. 옛부터 오늘까지 그 이름을 보자하여, 만물의 근원을 통솔한다. 내가 무엇으로 만물의 근원의 실상을 알까. 이것, 즉 도로써 아는 것이다.
구부러지면 온전하고, 굽으면 곧 펴고, 오목하면 곧 차고, 해지면 곧 새로워지며, 적으면 곧 얻고, 많으면 곧 미혹된다. 이런 관계러 성인은 하나, 즉 도를 지녀 천하의 법식이 된다. 스스로 나타내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뚜렷해지고, 스스로 옪다고 하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선이 밝혀지고, 스스로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오래 존경을 받는다. 오직 싸우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천하가 진실로 이와 싸우지 않는다. 옛날의 이른바 구부러지면 온젛나다 함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참으로 완전히 하여 이를 돌린다.
희언은 자연이니, 그런고로 회오리바람은 아침을 마치지 못하며, 소나기는 하루를 마치지 못하니 누가 이것을 하는가? 곧 천지이다. 그 천지조차 오히려 오래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도에 종사하는 자는, 도가 있는 자에게는 도에 같아지고, 덕이 있는 자에게는 덕에 같아지고, 실이 있는 자에게는 실에 같아진다. 도에 같아지면 도가 있는 자도 또한 이를 얻어서 즐거워하고, 덕에 같아지면 덕이 있는 자도 또한 이를 얻어서 즐거워하며, 실에 같아지면 실도 또한 이를 얻어서 즐거워하니, 신실함이 부족하면 신뢰받지 못하게 된다.
二十四.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췌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발돋움하는 자는 서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걷는 자는 가지 못하고, 스스로 나타내는 자는 뚜렷해지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나타나지 못하고, 자기 공을 자랑하는 자는 공이 무너지고, 자만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도에 있어서 찬밥이요 쓸모없는 행동이라, 누구나가 항상 이를 미워한다. 그러므로 유도자는 거기에 몸담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의 물이 있는데, 뒤섞여 이루어져 천지에 앞서서 생겼다. 그것은 적막하여 소리가 없으나 독립하여 영구불변하고, 널리 행하여 위태롭지 않으니, 따라서 천하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르나 그의 자를 도라고 하고, 억지로라도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대라고 한다. 크므로 움직여서 가고, 가므로 멀어지고, 멀어지므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도 또한 크다. 세상 중에는 사대가 있는데, 왕은 그 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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