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송나라 장영이 익주지사로 재임하여 백성들이 자기를 신임하는 줄을 알고 엄격하던 것을 너그러움으로 바꾸었으나, 한 번 명령이 내려지면 백성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전에게 묻기를,
“백성들이 나를 신임하는가?”
하니, 이전이,
“위엄과 은혜가 백성들에게 미치어 백성들이 모두 신복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장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초임 때는 그렇게 되지 않더니 이제 재임하고 보니 다소 나아졌으니 5년 만에야 백성들의 신임을 받게 된 셈이다.”
송나라 범순인이 제주지주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공을 격려하여 말하기를,
“공께서는 정사를 너그럽게 하시지만, 제주 백성들은 흉악하고 사나워서 노략질하고 겁탈하기를 좋아하니 엄하게 다스려야 마땅합니다.”
하니, 범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그러움은 내 성품에서 나오는 것인데, 만일 억지로 사납게 다스리면 오래 갈 수 없을 것이요, 사나움으로 흉한 백성들을 다스리다가 오래 계속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놀림을 받게 될 것이다”
주석
거상불관: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함. 이 말은 ‘논어’ ‘팔일편’에 보임.
위례불경: 예를 차리기는 하되 공경하지 않음.
해설
수령의 지위는 존엄하여 여러 아전들은 그 앞에 엎드리고 서민들은 뜰 아래에 있는 법인데, 다른 사람이 그 곁에 있어서 되겠는가? 비록 자제와 친척, 빈객이라 하더라도 모두 물리치고 혼자 우뚝 앉아 있는 것이 예에 알맞다. 밝은 낮에 공청에서 물러 나왔을 때나 일이 없는 고요한 밤에는 불러서 만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어버이 있는 곳에 나아가 문안하고 나온 후 인사를 받는다. 혹 부형이나 어른이 안채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공사가 끝난 후에 잠깐 들어가 인사를 드려야지 부형이나 어른이 정당에 둘러앉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상산록’에 말하였다.
“관청 뜰에서 푸닥거리를 하고 안채에서는 굿을 하며, 중과 무당이 뒤섞여서 징과 북을 시끄럽게 울려 대게 하는 것은 결코 관부의 체모가 아니다. 만약 수령이 밖에 나간 틈을 타서 이런 괴상한 짓을 한다면 이는 처자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더욱 그 집안의 법도가 없어졌음을 알 수 있다.”
주석
체모: 체면. 체통.
좌측: 자리 옆. 옆자리.
해설
당 나라 배도가 중서성에 있을 때, 보좌관이 인장을 잃었다고 아뢰었으나 배공은 여전히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얼마 후에 다시 원래 두었던 자리에서 인장을 찾았다고 아뢰었으나 배도는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이는 반드시 아전이 인장을 훔쳐서 문서에 찍고 있는 중일 텐데, 급하게 되면 물이나 불 속에 던져 버릴 것이요, 늦추어 주면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니, 모두 그의 도량에 탄복하였다.
당 나라 유공권이 한번은 은 술잔을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동여매고 봉해 놓은 것은 전과 다름없었으나 넣어 둔 물건이 모두 없어졌는데도 종들은 모른다고 속였다. 유공권은 웃으면서,
“은 술잔에 날개가 돋혀서 날아간 모양이구나.”
하고는 더 따지지 않았다.
송 나라 왕문정은 평생토록 노여움을 밖으로 나타낸 일이 없었다. 음식이 불결하면 먹지 않을 뿐 나무라는 말이 없었다. 집안 사람들이 그의 도량을 시험하기 위해서 먼지를 국물 속에 넣었더니, 공은 밥만 먹을 뿐 역시 말이 없었다. 왜 국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어쩐지 고기가 먹기 싫다.”
하였다. 하루는 또 먹물을 밥 위에 끼얹었더니, 공을 보고서 또 이렇게 말하였다.
“어쩐지 밥이 싫으니 죽을 쑤어 오라.”
송 나라 여조겸이 젊을 적에 성질이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득 집안 물건을 부수었다. 후에 오랫동안 병을 얻어 ‘논어’를 아침 저녁으로 한가로이 읽더니,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마음이 평화롭고 조용해져 그 후로는 평생 갑자기 성내는 일이 없었으니 이야말로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송 나라 한기가 정무를 다스릴 때 밤중에 공문을 쓰면서 한 병사에게 촛불을 들고 서 있도록 하였다. 병사가 한눈을 팔다가 촛불로 공의 수염을 태웠으나 공은 옷소매로 문지르고서 여전히 공문을 계속해서 썼다. 얼마 후에 돌아다보니 그 병사가 교대되어 있었다. 공은 그 병사가 매를 맞을까 걱정하여 속히 불러오도록 하면서 말했다.
“그를 바꾸지 말라. 이제는 촛불을 잡을 줄 알 것이다.”
명 나라 장요는 성품이 너그러웠다. 양주지부로 있을 때 어느 날 저자에 나갔는데, 한 아이가 띄운 연이 잘못하여 공의 모자에 떨어졌다. 아랫사람들이 그 아이를 붙들어 오려고 하자, 공은 이렇게 말렸다.
“아이가 어리니 놀라게 하지 말라.”
또 어떤 부인이 창문으로 물을 버리다가 잘못하여 공의 옷을 더럽혔다. 그 부인의 남편을 잡아 묶어 오니 장요가 아랫사람들을 꾸짖어 돌려보내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공이 너무 관대함을 의아스럽게 여기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명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인이 실수를 하였을 뿐인데 그 남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명 나라 장형이 수령으로 있을 때 급히 보고해야 할 옥사가 있어서 밤중에 촛불을 잡고 관리들을 재촉하여 문서를 작성하였다. 밤중에 문서가 완성되었는데, 한 관리의 옷소매가 촛불을 스치는 바람에 문서 위에 초가 넘어져서 문서가 못쓰게 되었다. 그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죽음을 청하니, 공은,
“실수한 것을 어쩌겠느냐?”
하고 재촉하여 다시 쓰게 하고는 태연히 앉아 기다리면서 새벽이 되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주석
부중즉불위: 장중함이 없으면 위엄이 없음.
지중: 무게를 지님.
해설
송 나라 조변이 촉을 다스릴 때, 한 기녀가 살구꽃을 머리에 꽂았으므로 공이 우연히 시를 지어 희롱하자 그 기녀 역시 시로써 응수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공이 늙은 군사를 시켜 그 기녀를 불러오게 하였는데 밤이 늦도록 오지 않으므로 사람을 시켜 재촉하고는 공이 방안을 거닐고 있다가 문득 혼자 외치기를,
“조변아, 무례해서는 안 된다.”
하고, 곧 불러오지 말도록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군사가 장막 뒤에서 나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상공께서 몇 시간이 못 되어 그런 마음이 식으리라 짐작하고 처음부터 부르러 가지 않았습니다.”
한지가 감사로 있을 때에 기생 수십 명을 항상 한 방에 두고 끝내 범하는 일이 없으니, 여러 속관들도 감히 가까이 하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조용히 속관들에게 묻기를,
“오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에 더러 여색을 가까이 해 본 일이 있는가?”
하니, 모두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한지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찌 내 자신이 금하고 있다 하여 다른 사람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난잡하게 하지 않으면 되는데 색정을 참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일찍이 호서에 있을 적에 토지를 점검하는 일로 청주에 보름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재색이 뛰어난 강매란 기생이 늘 곁에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잠결에 무심코 발을 뻗으니 사람의 살결이 닿아 물어보니 강매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청주 수령께서 제가 공의 잠자리를 모시지 못하면 죄를 주겠다고 명하시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몰래 들어왔습니다.’ 하였다. 나는 ‘그것이야 쉬운 일이다.’하고 곧 이불 속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 후 13일 동안 동침하였으나 끝내 어지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서 돌아올 적에 강매가 울기에 내가 ‘아직도 정이 남아 있느냐?’ 하니, 강매가 대답하기를 ‘무슨 정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안했기 때문에 운 것입니다.’ 하였다. 수령이 희롱하기를, ‘강매는 좋지 못한 이름을 만년에 남기고 공은 좋은 이름을 백대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조선 세종 때 사람 박신이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는데, 강원도 안렴사가 되어 강릉 기생 홍장을 사랑하여 정이 아주 두터웠다. 임기가 차서 돌아가게 되자 부윤 조운흘이 거짓으로,
“홍장은 이미 죽었습니다.”
하자 박신은 슬퍼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강릉에 경포대가 있는데 부윤이 박신과 놀이를 하면서 몰래 홍장을 곱게 단장시키고 고운 의복 차림을 하게 하여, 따로 놀잇배 한 척을 마련하고 눈썹과 수염이 센 늙은 관인 한 사람을 골라 의관을 크고 훌륭하게 차리도록 한 다음 홍장과 함께 배에 태웠다. 또 배에다 채색 액자를 그 위에 이런 시를 지어 썼다.
태평 성대 신라의 늙은 안상이/ 천년 풍류 아직도 못 잊어/ 사신이 경포대에 노닌다는 말 듣고서/ 그림배에 홍장을 싣고 왔네
천천히 노를 저으며 포구로 들어와서 바닷가를 배회하는데 풍악소리가 맑고 그윽하여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였다. 조운흘이,
“이 곳에 신선이 있어 왕래하는데 바라보기만 해야지 가까이 가서는 안 됩니다.”
하니, 박신은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다. 갑자기 배가 순풍을 타고 잠깐 사이에 바로 앞에 다다르니, 박신이 놀라서 신선이 분명한 것으로 여겼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홍장이어서 한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조선 영조 때 사람 유관현은 성품이 검소하였다. 그는 벼슬살이할 때 성대한 음식상을 받으면,
“시골의 미꾸라지찜만 못하다.”
하였고, 기생의 노래를 들으면 이렇게 말했다.
“논두렁의 농부 노래만도 못하다.”
주석
단주절색: 술을 끊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음.
성악: 노래. 음악.
여승대제: 마치 제사를 지내듯 엄숙히 함.
유예: 놀기를 즐거워함.
안상: 신라 때의 국선.
(계속)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