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벌레로 유명한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는, 한 고을의 수령이 백성에 대하여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서입니다. 그 중에 제1조는 이제 막 수령에 임명된 자가 부임할 때 어떤 자세로 부임해야 하는지, 부임 시 허례허식보다는 백성의 형편을 헤아리며 부임할 것 등에 교훈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향한 정약용 선생의 깊은 사람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목차
음역
타관가구 목민지관 불가구야니라
해석
다른 벼슬은 다 구해도,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
해설
윗사람을 섬기는 자를 백성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를 사라 한다. 사란 벼슬살이 하는 사람이니, 벼슬살이 하는 자는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중앙의 관원은 왕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직분으로 삼거나 각 기관의 직무를 맡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기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면 대개 죄가 되고 뉘우칠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수령만은 만민을 다스리는 자로서, 하루에 갖가지 일을 처리함이 임금과 같아서, 그것의 크고 작음만 다를 뿐 처지는 실로 같은 것이다. 이런데도 어찌 스스로 구할 수 있겠는가.
수령 노릇의 어려움은 옛날 공후보다도 백 배나 더하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위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명철하지 못하면 하지 못한다. 능력이 없는 자가 수령이 되면 백성들은 그 해를 입어 곤궁하고 고통스러우며, 사람이 비난하고 귀신이 책망하여 재앙이 자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런데도 아래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성 때문에 지방관 되기를 청하고, 위에서는 그 효도 때문에 허락하는데, 이런 일이 풍습이 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대체로 집은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으되, 끼니도 잇기 어려운 것을 그 사정으로 보아서는 진실로 딱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정한 도리로 말하면 벼슬을 위해서 사람을 고르는 것이요, 사람을 위해서 벼슬을 고르는 법은 없으니 한 집안의 생계를 위하여 만민의 수령이 되기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신하 된 자가 만민에게 거두어다가 자기 부모를 봉양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당치 않은 일이요, 임금 된 이가 만민에게 거두어다가 그 사람의 부모를 봉양하라 허락하는 것도 이치에 당치 않은 일이다.
만약, 재주를 가지고 도를 지닌 사람이 스스로 제 능력을 헤아려 보아, 목민할 만하면 글을 올려 자신을 천거하여 한군을 다스리기를 청하는 것은 좋다.
퇴계 이황이 이정에게 보낸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맛있는 음식이 없으면 자식으로서 큰 걱정거리가 되겠지만, 요새 사람들은 매양 부모 봉양을 빙자하여 의롭지 못한 국록을 받고 있으니, 이는 공동묘지에서 제사 음식을 빌어다가 봉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주석
목민지관: 지방에서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행정 조직의 장. 수령.
공후: 제후. 옛날 벼슬을 공, 후, 백, 자, 남의 등급으로 나누었음.
이황(1501-1570): 조선 명조, 선조 때의 학자. 자는 경호, 호는 퇴계, 본관은 진보. 시호는 문순. 이정(1512-1571):호는 귀암, 본관은 사천. 이황의 제자.
음역
제배지초에 재불가남시야니라.
해석
임명 초에 재물을 함부로 나누어 주어서는 안 된다.
해설
바라던 관직에 임명되었다 하여 공연히 마음이 들떠서 그 동안 신세를 진 사람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선심을 쓰기 쉬운데 이는 결국 나중에 그 비용을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보충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령의 봉록은 달로 배정되지 않음이 없고, 매달의 액수를 따져 보면 결국 일당인 셈이다. 그런데도 앞당겨서 재물을 쓰는 것은 모두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게 되는 셈이며,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는 것은 탐욕스러울 조짐이다. 수령이 도임하기 전에는 봉급이 없는데, 아직 서울을 떠나지 않아서 어떻게 그 고을 재물을 쓸 수 있겠는가. 부득이한 경우에는 쓰되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재촉하기를,
“그대는 부유한 고을을 얻어 나가 백성의 고혈을 먹을 것이니 미리 대접하고 가라.”
함은 예가 아니며, 수령은 이에 순응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도 예가 아니다.
“내가 풍부한 고을을 얻어 백성의 고혈을 먹을 것이니 그런 비용쯤 어찌 사양하랴.”
주석
제배: 벼슬에 제수됨.
남시: 함부로 베풀어 줌.
음역
저보하송지초 기가생폐자 생지.
해석
저보를 내려 보내는 처음에 줄일 수 있는 폐단은 줄여야 한다.
해설
새로 수령이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고을에서는 관사를 수리하고, 맞을 준비에 많은 비용과 인력이 들게 마련이니, 발령이 나면 부임지에 이런 법석을 떨지 못하도록 단속하여 폐단을 줄여야 한다.
수령을 새로 맞이하는 예절에, 첫째 예물을 바치는 일, 둘째 관아 사택을 수리하는 일, 셋째 각종 깃발을 들고 영접하는 일, 넷째 풍헌과 약정들이 문안 드리는 일, 다섯째 중도에서 문안 드리는 일인데, 그 폐단 중에는 생략해도 될 것이 더러 있다.
새로 맞이하는 깃발은 으레 속오군을 잡아다가 받들어 잡도록 하는데, 고을에 들어오는 자는 수십 일씩 묵어 농사철을 당하면 더욱 백성들의 폐해가 되니 유의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촌백성들이 읍에 와서 머물게 되면 민폐가 된다. 그러므로 풍헌과 약정 등이 문안 드리는 일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
새로 맞이하는 처음에는 고을 아전의 문안이 잇달아 끊이지 않는데, 필경 그들이 왕래하는 비용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석
저보: 서울에 와 있는 지방 고을의 서리가 자기 고을에 보내는 통지문.
생폐: 폐단을 줄임.
풍헌과 약정: 한 동네의 일을 맡아보던 고을의 직임.
속오군: 임진왜란 이후, 지방에서 군역이 없는 양인이나 공사의 노예를 골라 조직한 군대.
음역
신영쇄마지전 기수공사 우수민부 시익군지혜 이략민재 불가위야.
해석
부임하는 쇄마의 비용을 국비로 지급받고 다시 백성들에게 거둬들인다면, 이는 임금의 은혜를 숨기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짓이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해설
관직에 부임하고, 전근을 가는 데는 모두 나라에서 경비를 따로 지급하는데도, 그걸 빙자해서 별도로 백성들에게 징수해 주머니를 채우는 일은 청렴하지 못한 일이다.
조정에서 수령을 맞이하고 보낼 때 혹 쇄마를 핑계하여 백성을 괴롭힐까 염려하여, 경비를 주어 거두어들이는 버릇을 막은 것이다. 이제 신, 구관이 교체할 때 그 경비를 민간에게 거두되, 혹 국비의 갑절이 되기도 하고, 혹 국비와 맞먹기도 하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 되어, 이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없으니, 이는 실로 예가 아니니, 일체 거두지 못하게 해야 한다.
새 관원이 처음 나타나면 백성들이 그 풍채를 상상하고 기대할 것인데, 이럴 때 이런 영이 내려가면 환호성이 우레와 같고, 칭송하는 노래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은 겁을 낼 것이며, 백성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아, 손해 보는 것은 3백 냥에 불과한데 이렇듯 환심을 사는 것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지금까지 도임하기 전에 이처럼 경비를 거두지 말라는 영을 내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는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마다 모두 청렴하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일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줄을 모르고, 도임한 후에는 이 일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나부터 먼저 이런 의로운 영을 내린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주석
공사: 나라에서 하사함. 공비.
쇄마: 부임하기 위해 지방에 비치해 두어 관원이 타도록 허가된 말.
수령은 나라로부터 봉급을 받지만 백성들은 자기 돈으로 부임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수령은 검소하게 부임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약용 선생의 교훈은, 한 고을의 수령이라 할지라도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실제로 정약용 선생이 부임했던 마을들의 백성들은 행복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정약용 선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파의 대표주자답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고의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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