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으로서 행차를 한 후, 부임한 마을의 관아에서 제일 먼저 수령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가에 대한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입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씩 이행해 나가는 것이 수령으로서의 신뢰를 쌓게 하는 지름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부임한 이후 수령이 해야 하는 일의 순서가 무엇일까요?
목차
음역
상관 불수택일 우즉대청 가야
해석
부임할 때에 날을 받을 것이 없고, 비가 오면 개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해설
날짜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봉고파직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폄하되어 파직되는 사람도 있고, 사고를 만나 떠나는 사람도 있다. 앞사람들의 징험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따르겠는가?
대개 보면, 새 관원이 가까운 곳에 당도하여서 혹은 하루에 겨우 한 역참만 가기도 하고, 혹은 종일 지체해서 길일을 기다리기도 하는데, 고을에 남아있는 이속들은 수군수군 비웃으며 그의 슬기롭지 못함을 헤아려서 알게 될 것이요, 부임 행차를 따르는 관속들은 집 생각에 마음이 초조한데 앉아서 노자만 소비하므로, 모두 원망할 것이다. 좋은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 도리어 원망을 당해내지 못하니 필경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다만 부임하는 날, 비바람이 치고 일기가 흐리면 백성들의 이목을 새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니, 청명한 날씨를 잠깐 기다림이 좋을 것이다.
고을의 경계에 들어서면 말을 달리지 말고 길가에 나와서 구경하는 사람을 금하지 말 것이며, 읍에 들어서면 더욱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무겁게 보이는 방법이다. 말 위에서는 눈을 두리번거리지 말고, 몸을 비스듬히 하지 말고, 의관을 엄숙하게 정제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장엄하게 보이는 방법이다.
주석
상관: 관직에 나아감. 부임.
대청: 날이 개기를 기다림.
음역
내상관 수관속참알
해석
부임해서 관속들의 인사를 받는다.
해설
좌수를 불러 이렇게 말해야 한다.
“급하지 않은 일은 며칠 기다리되, 만일 시급한 공사가 있으면,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구애치 말고 아뢰어도 좋다.”
공청이 굉장하고 화려하더라도 좋다는 말을 하지 말며, 공청이 퇴락하였더라도 누추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좌우의 온갖 기물들이 아름답거나 추하더라도 일체 못 본 체하여, 눈은 마치 보이지 않고 입은 마치 말을 못 하는 것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일찍 조례를 행하는 것이 옛날의 예법이다. 고을이 작더라도 조례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매양 보면, 수령들의 기거가 절도가 없어서, 해가 세 발이나 떠오르도록 깊이 잠들어 있고 아전이나 장교 등 여러 일을 맡은 자들이 문 밖에 모여서 느릅나무나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서성거리고 있으며, 송사하러 온 백성들이 머물러서 드디어 하루 품을 버리게 된다. 모든 사무가 지체되고 만사가 엉망이 되니 매우 옳지 못한 일이다. 혹 너무 일찍 일어나도 아전들이 괴롭게 여긴다. 비나 눈으로 땅이 질척거리면 인사를 생략하도록 한다.
주석
관속: 벼슬아치들.
참알: 어른을 찾아뵘.
음역
참알기퇴 목연단좌 사소이출치지방 관엄간밀 예정규모유적시의 확연이자수
해석
인사하고 물러가면 조용히 단정하게 앉아서 백성을 다스릴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너그럽고 엄숙하고 간결하고 치밀하게 규모를 미리 정하되, 오직 시의에 알맞도록 할 것이며, 굳게 스스로 지켜 나가도록 해야 한다.
해설
옛날 당 나라 사람 유중영이 경조윤이 되었을 때 한 아전이 곡식의 납일 기일을 어기자 곤장을 쳐 죽이니, 정령이 엄하고 밝아졌다. 뒤에 하남윤이 되어서는 관대하고 은혜로움으로써 정사를 행하였다. 어떤 사람이 경조윤 시절과 같지 않다고 말하니, 유중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이 계시는 곳에서는 위엄이 앞서야 하고, 군읍을 다스릴 때는 은혜와 사랑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장영이 촉 지방을 다스릴 때, 처음에는 엄하게 다루다가 두 번째 부임해서는 백성들이 자기를 믿는 줄을 알고, 드디어 엄한 태도를 고쳐 너그럽게 대하였다. 이는 모두 풍속에 따라 변통할 줄을 안 것이다.
주석
목연: 조용하게
시의: 때에 알맞음.
厥明 謁聖于鄕校 遂適社稷壇 奉審唯謹
궐명 알성우향교 수적사직단 봉심유근
해석
그 다음날 향교에 나아가 선성을 알현하고 이어 사직단으로 가서 봉심하되 오직 공손히 해야 한다.
해설
이 날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횃불을 들고 향교에 가서 촛불을 켜고 절을 한다. 절이 끝나면 전상에 올라가 봉심하고, 다시 동쪽 채와 서쪽 채로 가서 봉심한다.
나와서는 명륜당에 앉아서 배례에 참여한 유생들을 불러 만나 보되 답배해야 한다. 유생들과 이렇게 약속한다.
“현임 향교 유생들은 앞으로 서로 만나게 되겠지만, 사철 첫 달의 분향은 내가 몸소 거행할 것이요, 봄, 가을의 석채도 내가 몸소 거행할 것이니, 그 날에는 서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때때로 백일장을 열어 선비들을 시험할 적에 재임은 예의상 자리를 정리해야 할 것이니 그 날은 서로 보게 될 것이요, 또 백성의 일이나 고을의 폐단에 대해서
공론을 알고자 하면 내가 응당 부를 것이니 그 날 서로 보게 될 것이다. 제군들은 관아에 와서 만나 보기를 청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고을의 신으로는 사직이 가장 큰데 근래 수령들이 전혀 삼가서 하지 않으니 매우 옳지 못하다. 여단이나 성황단도 몸소 가지는 않더라도, 수령은 모든 신의 주재자이니, 부임한 처음에 예를 차려 사람을 보내어 봉심하는 것이 옳다.
주석
향교: 고을에 있는 공자의 사당. 여기에서 유생들이 공부를 함.
사직단: 토지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
봉심: 살펴봄.
이제 막 부임하였다면, 앞으로 수령으로서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것을 정약용은 권면합니다. 수령의 책무에 관한 정약용의 생각은, 모두 백성을 위한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허례허식을 통하여 백성에게 부담주지 말고, 백성들의 원통함을 속히 해결해 주는 것이 수령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나의 주변에서 이러한 수령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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