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CA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의 불확실성'입니다. 본 에세이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키에르케고르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통찰을 통해 불확실성의 본질을 탐구하고, 불교와 스토아 철학의 지혜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합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제공하는 궁극적 확실성의 의미를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다.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앞에서 존재론적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확실성'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모래성과 같이 취약한 것이었음을 드러냈다.
하이데거는 "불안은 무(Nothingness)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상태가 아닌, 존재 자체의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실존적 경험이다. 마치 절벽 끝에 선 사람이 느끼는 현기증처럼, 우리는 자유와 가능성이라는 심연 앞에서 존재론적 어지러움을 경험한다. 사르트르는 이를 '선택의 부담'이라고 표현했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현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지 앞에 서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더 큰 불안을 경험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액체 근대성'이라 명명한 현대사회는 그 어떤 것도 고정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인공지능은 기존 직업의 존속 가능성마저 위협한다. Z세대들이 경험하는 '일자리 불안'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더욱이 기후위기는 인류 존속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확실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모든 존재가 변화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상함이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유사한 통찰을 보여준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이는 불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 전환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말하는 신앙이 불확실성의 제거가 아닌, 불확실성 속에서의 도약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는 이를 '나-너'의 관계성으로 설명한다. 진정한 관계는 완전한 예측과 통제가 아닌, 신뢰와 사랑에 기반한 만남이다.
이러한 철학적 통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 제공하는 확실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독교적 확실성은 불확실성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닻과 같은 것이다. 철학자 파스칼이 말한 "이성의 이유를 모르는 마음의 이유"처럼,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은 단순한 인식론적 확실성을 넘어선다.
폴 틸리히는 이를 "절대적 신앙"이라 불렀다. 이는 모든 구체적 확실성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견고히 서는 궁극적 신뢰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영적 성숙함을 얻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불확실성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통과하여 더 깊은 확실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VUCA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궁극적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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