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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림절 성탄절 설교, 미가서 5장 2절, 작은 마을에 임한 더 큰 은혜

데이터통/대림절 크리스마스

by 수집쟁이 2023. 12. 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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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림절 성탄절 설교, 미가서 5장 2절, 작은 마을에 임한 더 큰 은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미가서 5장 2절, 작은 마을에 임한 더 큰 은혜

 

 

성탄절: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향

 

성탄절은 추억 저장소입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은 성탄절에 관한 추억이 하나씩 있을 것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아련하지만 엄마 품과 같은 따뜻한 인생 추억과 신앙 경험이 성탄절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부르며 인생의 즐겨찾기로 이용합니다. 성탄절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향으로, 한 번쯤 다시 가서 추억을 꺼내 보고 싶은 장소와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기쁜 생일이자 동시에 우리의 구원이 준비되고 시작된 날입니다. 그래서 시간적인 측면으로 보면 성탄절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일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태어난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영적 생명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에 장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의 영적 고향이기도 합니다.

 

성탄절은 우리 인생의 추억이 담긴 삶의 일부분이며, 구원의 의미가 담긴 영혼의 전부입니다. 영적 생일이자 고향인 성탄절에 우리가 더듬어야 할 소중한 영적 추억과 교훈은 무엇일까요?

 

 

작은 마을 베들레헴: 겸손의 고향

 

본문은 미가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메시아 탄생의 기대와 신비함, 성탄의 기쁨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고 부르십니다. ‘에브라다’는 ‘떡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유다 족속 중에 작은 마을’에서 ‘작을지라도’의 히브리어 ‘차이르’는 크기가 작은 것을 의미하고 천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작고 비천한 곳에서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겸손한 모습으로 오셔서 비천한 자들을 높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눅 1:52). 예수님은 대도시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도시의 환하고 밝은 등불이 아닌 마구간의 어둠을 등에 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겸손하게 우리 곁에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고향인 성탄절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영적 추억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영혼에 그려 넣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높고 거룩하신 예수님이 겸손하게 낮아져서 사람으로 오신 날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교만해서 불순종했지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은 겸손의 본을 보이시며 순종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고전 15:45). 예수님께서 겸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겸손이 이 땅에 임한 날이며, 예수님을 통해 ‘겸손’이 실현된 기쁜 날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주목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길 원하고 공동체에서 중심인물과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유다 구석에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탄생하셨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서 시작하셨습니다. 화려한 혈통이 아닌 가난한 목수 집안의 아들로, 세상 권력의 주변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고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빌 2:6~8). 겸손히 자신을 낮추되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십자가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에는 겸손의 씨앗이 심겼고,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 언덕에는 겸손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겸손의 씨앗이요, 골고다 십자가는 겸손의 열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겸손하게 태어나신 것처럼 여러분도 겸손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작은 베들레헴에 머물며 영혼에 겸손의 씨앗을 심는 낮은 성탄절을 즐겨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겸손하게 작고 낮은 곳에 처할 때 우리는 위로부터 임하는 성탄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겸손은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닮는 것이며,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의 구원을 담는 복된 그릇입니다.

 

 

겸손한 탄생이 겸손한 사역으로

 

우리에게 겸손하게 오신 예수님은 사역의 중심에도 겸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들은 주로 어부였고 소수의 세리도 있었습니다. 어부는 당시 평범한 직업이었고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들은 상류층이 아닌 평민이었고 영적 관심 밖에 있던 주변인이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겸손히 사역하셨고, 그들을 훈련 시켜 겸손히 십자가를 지는 제자로 만드셨습니다. 초대 교회를 세우고 움직인 사람들 역시 자랑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보다 내세울 것 없지만 겸손한 작은 순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평범한 겸손의 사람들을 택하셔서 비범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셨습니다. 겸손하게 낮은 곳에 처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섬기게 함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의 변두리에 있지만,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들과 동역하셨습니다. 베들레헴같이 작지만,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겸손히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겸손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고향이자 다윗의 고향입니다(삼상 17:12). 그리고 다윗 가족의 고향이기도 합니다(룻 1:2).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 하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입니다(마 1:1). 동향의 영육 간 선후배인 예수님과 다윗은 ‘겸손’이라는 영적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님께서 유다의 변두리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겸손히 사역하셨던 것처럼 다윗 또한 그랬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로 도망갔을 때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은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이 원통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22:1~2). 이들은 사회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준비된 것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주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다윗 왕국을 건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겸손을 가진 다윗과 함께 통일 왕국을 건설하며 주의 나라를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윗의 모든 겸손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시 132:1).

 

 

겸손: 더욱 큰 은혜

 

기억하십시오. 겸손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말씀은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는 ‘그냥 은혜’가 아니라 ‘더욱 큰 은혜’입니다. 사실 그냥 은혜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데 겸손한 사람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니 겸손이 주는 능력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겸손하신 예수님과 다윗이 더욱 큰 겸손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며 주의 일을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이번 성탄절에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머물며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더욱 큰 겸손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 십자가를 완성하는 사명의 성탄절을 만드십시오. 승리로 향한 길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으로 포장된 길입니다. 탄생부터 겸손한 순종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처럼 겸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이번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파커 J. 파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져도 괜찮은 땅이다.” 그의 말처럼 겸손은 우리 영혼을 낮은 곳에 서 있는 십자가에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을 버리고 겸손히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처럼, 겸손은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 앞에 우리를 서게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십자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입니다(갈 6:14). 겸손한 사람이 서게 되는 낮은 곳은 십자가의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 중국의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가 모든 강 가운데 왕이 되는 것은 바다가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집합 장소이다. 그런데 바다는 이에 대해 한 마디의 불평도 없다.”

 

육지에서 흐르는 모든 물이 마지막에 이르는 종착역은 바다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모입니다. 바다는 저수량이 가장 많고 면적도 가장 넓습니다. 바다는 물의 세계에서 최상위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바다는 물의 세계에서 가장 아래에,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바다는 육지의 썩은 물이 모이는 집합 장소입니다. 그런데 바다는 3%의 염분으로 썩은 물을 정화해 생명을 공급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는 오염된 물을 다시 살려서 부활의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놀라운 것은, 바다는 이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히 부활의 생명 역할만 감당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현자는 모든 물 중에 바다가 가장 위대하다고 합니다. 겸손의 승리입니다.

 

예수님도 영혼의 바다가 되셔서 모든 죄인을 품으셨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베들레헴에 겸손히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태어날 수 있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낮은 곳에 겸손히 오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영적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보십시오.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방문해 겸손의 옷으로 갈아입고 성탄절을 맞이하십시오. 예수님의 생일 성탄절을 겸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나의 생일로 만들어 보십시오. 겸손한 곳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삶을 택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십니다(벧전 5:6). 성탄절에 새긴 겸손은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활천 2020년 12월, 서귀포교회 이기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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