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왜곡되어 보이며 악한 자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도덕과 윤리를 배울 때는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며 흥부처럼 살라고 하지만, 현실은 놀부가 잘 살고 심판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신가요?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고민입니다. 특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심기가 매우 불편하며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보는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사회적인 성공이 반드시 내적인 평화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잘 살고 있다'는 말의 의미는, 지역이나 사회, 나라와 민족 혹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은 물질적인 요소와 함께, 정신 건강과 관련된 부분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기에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부탄과 같은 나라는 예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탄은 가난한 나라이지만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단순히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결정 지을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니다. 과거의 학폭 때문에 연예인으로 데뷔했다가 퇴출 되는 경우들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숨겨진 죄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누구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삶이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이 아닐까요? 당당하게 사람 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잘 살아온 사람이며, 또한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불공평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동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공정성과 친절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전면에 나서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역사의 뒷 편에서 일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 속에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시고 일하십니다. 근시안적인 우리의 시선 때문에 우리가 그 퍼즐 조각 전체를 보지 못할 뿐입니다.
불합리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결국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잠시 동안 이익을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그들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날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악한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당신이 공정하고 친절한 세상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므로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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